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트리폴리 백국 (문단 편집) == [[2차 십자군]]의 시대 == 레몽은 이 이상의 영지를 빼앗기지 않는 선에서 트리폴리 백국을 안정화 시키고 싶었지만, 시류는 그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멜리장드]]와 [[풀크]]가 십자군의 군왕이 된 후, [[에데사 백국]]은 결국 [[장기 왕조]]의 손에 떨어졌다. 남은 영토는 [[동로마 제국]]의 손에 팔려나갔지만, 그들도 수복에는 소극적이었다. 십자군 백국이 무너졌다는 소식은 온 서유럽에 경각심을 심어주었고, 결국 [[에데사]] 탈환을 위한 2차 십자군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트리폴리 백국의 레몽 2세에게 있어서 십자군은 별로 좋지 못한 소식이었다. 그의 친척이자, [[1차 십자군 원정]]의 영주였던 툴루즈 백작 레몽의 적통[* 트리폴리 백작 레몽 2세의 할아버지인 베르트랑은 서출에 가까운 출신이라 프랑스 영지를 얻지 못하였다.]인 알폰소가 2차 십자군의 주요 영주로 참전했기 때문이었다. 알폰소는 자신의 서자인 베르트랑과 대군을 거느리고 지중해를 횡단중이었는데, 그는 마음만 먹으면 트리폴리 백국에 클레임을 걸고 삼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1148년 6월, 십자군 영주들은 모두 [[아크레]]로 모여 [[다마스쿠스]]를 공략할 방법을 정하기로 했지만, 트리폴리 백작 레몽은 이에 참석하지 않았다. [* 이 덕에 다마스쿠스의 영주 무인 앗 딘은 레몽을 호의적으로 생각했다.] 시시각각 알퐁스의 군대는 트리폴리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백국 귀족들의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하지만 오랜 항해로 인해 병이 생긴 알퐁스는 성지에 도착하자마자 죽음을 맞이했고, 그의 아들 베르트랑은 일단 십자군 본대와 함께 [[다마스쿠스]]를 공략하기로 결정하고 방향을 틀었다. 트리폴리가 맞이한 가장 큰 적은 바로 유럽의 십자군이었다. 유럽 계열 십자군들은 트리폴리 백작이 알퐁스를 암살했다고 주장하고 기소하려 들었지만, 일단 그의 아내의 누나인 [[멜리장드]]의 중재로 타협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베르트랑과 툴루즈 군대는 트리폴리 백국에 대한 야욕을 숨기지 않으려 들었다. 결국 그들은 트리폴리의 아라이마 항구를 점령하고 주요 요새들을 공성하기 시작했다. 트리폴리 백국에는 이미 이들을 막을 군대가 없었다. 하지만 도움은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다마스쿠스]] 공성에 참가하지 않고 옛 동맹을[* 다마스쿠스 영주들은 대대로 십자군과 동맹관계였던 편이였다.] 지켜 준 감사의 의미로, 다마스쿠스 영주 무인 앗 딘과 [[장기 왕조]]의 누르 앗 딘이 트리폴리 백작에게 대규모 지원군을 보내준 것이다. 그들은 손쉽게 아라이마를 점령하고, 성벽만을 손상시킨 채 레몽에게 베르트랑이 빼앗은 지역을 모두 돌려주었다. 레몽은 1150년에 이 지역들을 [[성전 기사단]]에게 넘겨 방비를 강화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